아이들의 사교육에 ‘무책임한’ 엄마
[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한겨레
»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영어를 더 일찍 잘할수록 더 나은 삶을 산다는데, 나는 철이 없는 걸까

일전에 어떤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중에 기자가 나한테 물었다.

“사교육을 안 시키신다는 게 정말이에요?”

물론 나는 아이들의 사교육을 안 시키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싼 곳에서 한 가지 내지 두 가지를 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사교육비 지출이 아주 낮다. 작은아이는 태권도 검은띠를 따고 제 뜻에 따라 이제는 검도에 도전하고 있다. 둘째는 초등학교 내내 합기도 검은띠를 딴 것 외에는 다른 학원에는 다니지 않다가 중학교에 간 후 동네 수학학원 하나, 그리고 큰아이 친구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다. 지금은 대학을 들어간 큰애도 방학 때는 학원을 하나, 그리고 학기 중에는 제가 아는 선배언니인 대학생에게 수학을 몇 달 배웠을 뿐이다. 만일 다른 엄마들처럼 대치동으로 강남 어디로 아이를 끌고 다니거나 고액과외를 했다면?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 그랬다면 우리 아이는 지금 다니는 대학도 가지 못했을 것 같다. 제 뜻이 아닌 걸 강요하는 엄마와 싸우느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인터뷰어는 자꾸 물었다.

“정말이에요? 그럼 불안하지 않으세요?”

“아이가 뭘 안 배우는데 왜 엄마가 불안하죠?”


“애가 나중에 …, 그러니까 어쨌든 애가 좋은 직장에 다녀야 하는 거잖아요?”

독일에 체류할 때 교장을 놀라게 한 사연

물론 나는 이해한다. 피아노·수영·영어·수학 등을 배워서 성적을 더 올리고 그래서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지만 …, 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다시 묻는다.

“그런데 좋은 직장 들어가도 정년 보장도 안 되잖아요. 그리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문제는 걔가 벌써 성년인 스무 살이 넘었을 때잖아요. 그걸 왜 엄마가 보장해 주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기자는 이런 사안으로 만난 인터뷰가 아닌데도 계속 물어댔다. 내가 무슨 ‘참교육 센터’에서 나오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 되었다.

“그래도 피아노 정도는 시켜야 되는 거 아닌가요?”

“왜 온 국민이 피아노를 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피아노 못 치는데, 사는 데 그렇게 불편하지 않아요.”

“…영어는요? 영어는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해야 …”

결국 이야기는 영어로 왔다. 영문학과를 나왔지만 문학을 전공했을 뿐이라고 우기는 나에게 말이다.

“저는 솔직히 왜 온 국민이 영어를 다 잘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조금 다른 이야기 같지만 독일에 잠시 머물 때 우리 둘째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근처의 독일 학교에 보낼까 망설이다가 국제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값이 비쌌지만 거기에 한국 아이들이 많이 다니고 있어서였다. 교장과 만난 첫날, 내가 말했다.

“우리 아이를 한국 아이가 있는 반으로 편성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장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여기에 한국·일본·독일·프랑스·핀란드·스웨덴 온갖 국적의 아이들이 있지만 모든 엄마들이 같은 나라 아이가 없는 반으로 보내 달라고 합니다. 그래야 하는 수 없이 영어를 하게 될 거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학부모는 처음 봅니다.”

철딱서니 없고 무책임한 엄마라고 손가락질을 받을지 모르지만 내가 대답했다.

“우리 아이는 영어가 배우고 싶어서 여기에 따라온 게 아닙니다. 부모 사정으로 왔어요. 나는 우리 아이가 독일에서의 체류를 행복으로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한국인 친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구요.”

석학들의 영어 발음이 후지더라도…

하지만 그 학년에 한 명 있던 다른 엄마의 반대로 우리 아이는 주로 머리가 노란 아이들이 있는 반으로 편성되었고, 그저 그렇게 그 일 년을 보냈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영어를 별로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찌 되었단 말일까?

독일에 있을 때 아이를 학교로 보내고 집에서 티브이를 틀면 온통 내가 모르는 독일어 방송이었다. 그래도 10년 동안 배운 언어라고 가끔 영국 방송인 ‘비비시’를 보곤 했는데 그때 <세계 석학들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인도, 프랑스, 중국 혹은 스웨덴, 스페인 등등. 놀라웠던 것은 그 석학들이 인터뷰하는 영어는 놀랍게도 ‘발음이 아주 후지다’는 것이었다. 나라에 따라 [r]이, 혹은 [th]나 [f] 혹은 [v]가 그랬다. 하지만 영어 발음이 ‘좋은’ 사회자는 그들의 말을 경청했고,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이의 소통과 권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영어가 그리 유창하지 않아 더듬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사회자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문제는 영어도 영어 발음도 아니고 그들이 이룬 성취에 있었다. 나는 그 장면들을 가슴에 새겼다. 유학생들의 말도 떠올랐다.

“처음에 와서 그 사람들이 내 말을 못 알아들을 때마다 내 발음이 문제가 있나 싶어서 몇 번씩이나 다시 말하고, 말하고 했어요. 3년쯤 지나면 알게 되지요. 발음은 거기서 거기고 내 얼굴은 누가 봐도 외국인이니 문제는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듣고 싶은지 아닌지에 있다고 말이지요. 유학 와서 오히려 느끼는데, 우리말 실력이 달려요. 논문 쓸 때 내가 정말 독일어가 아니라 우리말을 못하는 걸 절감해요.”

외국여행을 나가보면 알 것이다. 우리에게 돈을 받아내는 사람들이 우리의 언어에 얼마나 겸손한지를. 또 외국에 나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우리의 언어를 경멸하고 조롱하려고 들면 그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의 언어를 가지고 우리를 바보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지 말이다.

내 친구의 이모는 하와이에 20년째 살고 계시는 예순다섯 할머니인데 지금도 하와이의 어떤 레스토랑에 가도 손가락으로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를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한다고 한다.

“저기, 창가에 제일 좋은 자리 내게 줘요.”(이게 영어가 아니라 다 우리말이다)

그 이모는 옷을 잘 차려입고 아름다운 핸드백을 들고 웃는다고 했다. 그러면 그 레스토랑의 모든 웨이터들이 그 할머니의 손가락이 지정하는 자리를 내어준다고 했다. 그러면 그 이모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영어로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th] 발음이 한국식인 “땡큐” 말이다. 물론 아름다운 웃음과 함께.

일전에 내가 취재를 했던 존경하는 정신과 의사는 여기에 영어를 잘하는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으러 온다고 했다. 놀면서 삶을 배워야 할 나이에 영어만을 강요하다가 ‘회로’가 엉킨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나는 실제로 그 병원 복도에서 “마미, 나는 헤이트 히어” 하고 말하는 어여쁜 꼬마를 보기도 했다. 그 엄마는 정말로 영어를 잘하면 아이가 더 나은 삶을 살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일등이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는 시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운 사람이 아니다. 사교육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다.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말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반기문 총장의 발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분에 대한 다른 평가는 차치하고 그 사람은 ‘꿈’과 재능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공부를 잘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다 가는 명문 ‘청주’로 유학조차 가지 못했지만, ‘꿈’을 위해 노력했고 그 부모들은 그런 자식에게 오직 고마움과 믿음을 주었다고 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자 기자는 시대가 달라졌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는 일등이 아니면 정말 먹고살 수가 없었다. 밥 한 그릇조차 버거웠던 시대 …,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다. 적어도 일등이 아니라도 ‘시민으로서 행복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인터뷰가 끝났는데 끈질긴 그 기자는 전화로 다시 물었다.

“아이들 우열반 편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나는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대답했다.

“모든 과목에는 아이들별로 분명 우열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함께 넣어놓으면 다들 힘들어요. 수학을 못한다는 게, 영어를 못한다는 게 열등하다는 것과 동일어가 되는 게 더 문제가 아닐까요? 김연아라면 어땠을까요? 박태환이라면? 우리 아이는 수학은 아니지만 영어도 아니지만 피겨도 수영도 아니지만, 그 다가 아니라도 무언가 잘하는 게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게 뭔지 아직도 나는 모르지만 저는 그걸 믿어주고 싶어요.”

기사가 나왔다. 기자는 나를 아직도 철없는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느 때처럼 생각했다. 하는 수 없지!

공지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