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 주민, 건설업체 직원이 휘두른 전기톱에 중상

[오마이뉴스 김종호 기자]

60여 일이 넘도록 성미산에 천막을 치고 주민들이 홍익재단과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성미산 공사를 맡은 쌍용건설(시공사)의 하청업체 직원이 심야에 벌목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이를 말리던 주민에게 전기톱을 휘둘러 주민이 큰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15일 새벽 0시 20분께 서울 마포구 성미산 공사현장에서 홍익재단측의 공사 하청업체 직원 송아무개씨가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혼자 전기톱으로 벌목을 시도하다 전기톱의 굉음을 듣고 달려 와 벌목을 막던 주민 안아무개씨와 실랑이를 벌이다 안씨의 발목(아킬레스건)에 부상을 입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마포경찰서 월드컵지구대는 가해를 입힌 송씨를 과실치상 혐의로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사고 현장에 있던 주민들과 출동한 경찰에 의하면 이날 악천후 속에서 송씨가 전기톱을 들고 벌목을 시작했고, 한밤중에 들려오는 전기톱의 굉음에 놀라 달려온 주민들이 바로 뒤에서 중지하라고 외치자 송씨가 엔진도 끄지 않고 만취한 상태에서 전기톱을 휘둘렀다는 것.

지난 12일 한 마을 주민이 벌목을 강행하려는 홍익재단측 인부에 맞서 나무를 붙잡고 저항하고 있다.
ⓒ 성미산대책위

이 과정에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주민 안씨가 술에 취한 송씨의 벌목을 제지하려다 멈추지 않고 계속 작동중인 송씨의 전기톱에 왼쪽 발목을 크게 다쳤다. 구급차로 병원에 긴급 이송된 안씨는 아킬레스건이 심하게 손상돼 15일 낮 2시간여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예견된 사고

성미산은 천연기념물 붉은배새매와 서울시가 보호종으로 지정한 새들이 살고 있는 절대 보존지역이지만 홍익재단이 홍익부속 초·중·고 이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성미산 주민들은 2003년 성미산배수지 건설 반대투쟁 이후 또다시 개발에 직면한 성미산의 생태 보존과 자녀들의 학습권 보장 등을 이유로 두달 넘게 천막 농성 등을 벌이며 반대 운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문치웅 성미산 대책위원장은 "정말 하늘이 도와서 이 정도에 그친 것이다. 이는 말 그대로 '살인행위'이다. 교육을 목적으로 학교를 짓겠다는 사람들이 2010년 서울시내에서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며 분개했다.

대책위는 이날 사고가 예견된 사고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번 일은 해당 인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술기운에 '사고 친' 것도, 혼자 벌인 우발적인 사고도 아니다. 성미산의 유혈사태는 늘 예고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문치웅 대책위원장은 "그동안 마을 주민들은 나무 한 그루라도 덜 베이게 하려고 성미산 공사현장 인부들을 따라다니며 읍소까지 했다. 톱이나 전기톱, 굴착기를 동원한 인부들을 상대로 주민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쓰러뜨리는 나무를 부둥켜안거나 인부들을 가로막으며 간절하게 호소하는 것뿐이었다. 자신들의 생업에 지장을 준다는 인부의 협박과 한탄을 들을 때마다 주민들은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까지 품었다. 늘 감정적 대립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정말 나무만 지키지 사람과 갈등하지 말자며 최소한의 방어만을 했다"고 강조했다.

성미산대책위원회는 "이번 사고의 책임은 홍익대와 서울시교육청에 있다"며 서울시 교육청앞에서 16일 오전 11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대책위는 "홍익재단측은 주민들과 이해갈등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 시도는 하지 않은 채, 시공사 쌍용건설과 삼은개발만을 앞세워 공사를 강행하려 했고, 서울시교육청은 안전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을 버젓이 알면서도 주민들의 수차례에 걸친 공사 중단 명령 요청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해왔다. 또한 주민들의 정당한 민원, 문제제기에 대해 홍익학원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다 결국 15일과 같은 사태를 불러온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원회는 이어 즉각적인 공사중단을 요구함과 동시에 홍익재단측이 지역주민과 대화에 나서길 바란다고 했다. 또 "서울시교육청은 주무관청으로 홍익초중고 건축허가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재검토하고, 폭력 공사를 당장 중단시킬 것"을 주문했다.

 

 

경기도 학교 체벌금지 내년으로 연기   -중앙일보

[중앙일보 최모란] 경기도교육청이 학생 체벌 금지와 두발 자유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학생인권조례안의 시행 시기를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다. 체벌 금지를 둘러싼 논란이 거센 데다 일선 교육현장에서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본지 8월 6일자 20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15일 “학생인권조례안을 9월 말이나 10월 초에 도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조례안이 의회를 통과해도 당장 시행하지 않고 내년 1월이나 3월부터 시행하도록 준비기간을 두겠다”고 밝혔다. 김 교육감은 “조례안 시행에 앞서 그린마일리지(상벌점제) 등 체벌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해 전문 연구기관에 용역을 의뢰한 뒤 10월께 배포하겠다”고 덧붙였다.

학생인권조례는 김상곤 교육감이 추진해 온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체벌 금지 ▶야간학습·보충수업 선택권 보장 ▶두발·복장 자유 ▶휴대전화 소지 허용, 소지품 검사 제한 ▶양심·종교·의사표현의 자유 등을 담고 있다.

도교육청은 올해 초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안을 마련했으나 6월 열린 교육위원회 임시회에서 심의를 보류했다. 이달 말 도교육위원회가 폐지되면 조례안은 자동으로 폐기된다.

그러나 6·2 지방선거에서 도의회가 여소야대로 바뀌면서 도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안을 다시 제출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교육계가 체벌 전면 금지를 반대하고 나섰다.

박해오 장학사는 “학생인권조례가 실행되려면 6개월이나 1년 정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준비기간을 두기로 했다”며 “먼저 체벌 대체 프로그램을 배포한 뒤 시간을 두고 전면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원=최모란 기자

 

 

 

점수 담합·교사간 반목…겉도는 교원평가     -경향신문

ㆍ낮은점수 준 동료 색출·부하 교원 압력수단 악용
ㆍ계량평가 부작용 심각… 갈등 부추겨 교단 뒤숭숭


경남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김모씨(35)는 지난달 동료교원 평가에서 소신 있게 점수를 준 후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 부장교사가 자신에게 ‘매우 우수’가 아닌 ‘보통’ 점수를 준 교사에 대한 색출 작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부장교사는 며칠간 교사들의 평가 결과를 탐문한 뒤 김 교사가 자신에게 ‘보통’ 점수를 준 사실을 알아내고 김 교사를 불러 “왜 ‘보통’을 주었느냐”며 따져 물었다. 이후에도 부장교사는 교감·교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학년부장과 삼자 대면을 하는 등 소신있게 평가한 김 교사에게 공개적 비난을 퍼부었다.

김 교사는 “‘혼자 승진하려고 다른 사람의 점수를 낮게 줬다’는 말까지 들었다”며 “서로 가장 좋은 점수를 주자는 암묵적인 분위기를 따르지 않고 소신대로 행동해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지난달 동료교원 평가를 앞두고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교장이 “반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반영해 동료교원 평가 점수를 주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교장은 이 외에도 지시사항이 있을 때마다 “교원평가 점수에 반영될 수 있다”는 말로 압력을 넣어 교사들을 경쟁으로 내몰았다.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박모 교사(42)는 “동료 교사들은 무조건 후한 점수를 주기 때문에 교장·교감 등 관리자의 점수가 변별력을 갖고 있다”며 “그것을 알고 있는 교장은 ‘말을 잘 들으면 점수를 잘 주겠다’는 식으로 동료교원 평가를 강요와 협박의 도구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 교원 능력개발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는 동료교원 평가가 교직 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부하 교사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평가 방법에 문제 제기를 하는 교사들도 있다. 초등학교 교사들과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평가 방법이 달라야 하고, 서술형 평가를 도입해 계량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는 현재의 평가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신동하 교사는 “중·고등학교는 다른 전공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동료교원 평가가 부적격 교원은 걸러내지 못하면서 잡무만 늘린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ㅎ고 최모 교사는 “지금처럼 매우 우수, 우수 하는 식의 계량적 평가 방법으로는 교단의 갈등만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며 “교사의 수업 개선 등 제도 도입 취지를 살리려면 서술형 평가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당국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현장으로부터 교원평가가 ‘실효성은 없으면서 무리가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특히 곽노현 교육감은 동료교원 평가 방법에 회의적이다”라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원평가 실시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교원평가 모형개선을 위한 의견수렴 협의회’를 전국 4개 권역별로 진행하고 있다.

 

 

 

‘못다 핀 꽃 ’ 작년 202명… 초중고생 자살 첫 200명 넘어   -동아일보

고교생이 69% 140명
원인은 ‘가정불화’가 1위, 우울증-성적-이성문제 順…전년보다 47% 늘어

지난해 초중고교생 자살자가 처음으로 200명을 넘어섰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김춘진 의원이 15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교생 자살자는 202명으로 2008년(137명)보다 47% 증가했다.

지난해 자살한 학생 중 고등학생이 140명(69%)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은 56명(28%), 초등학생은 6명(3%)이었다. 2008년에는 고등학생 자살자가 89명, 중학생은 43명, 초등학생은 5명으로, 고등학생 자살자는 57%나 늘었다. 자살 원인은 가정불화·가정문제가 69명으로 가장 많았고, 우울증·염세가 27명, 성적 비관 23명, 이성문제 12명, 신체결함·질병 7명, 폭력·집단괴롭힘 4명, 실직·부도·경제궁핍 1명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59명에 달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이구상 팀장은 “청소년은 성적, 학교, 가정문제 등으로 우울증을 겪다가 자살을 택하는 사례가 많다”며 “대부분 여러 번 자해 끝에 자살하는데 부모나 주변 사람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들은 대개 인터넷에서 자살 정보를 얻고 연예인 자살도 큰 영향을 주므로 관련 정보를 가급적 차단해야 한다”며 “자살 충동을 겪는 청소년은 당장이 아니더라도 성인기에 확실한 방법으로 자살할 확률이 높아 조기 치료와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 학교 중 1100여 곳에서 학생정서발달 검사를 실시해 치료가 필요한 학생들을 지역정신보건센터나 Wee센터에 보내고 있다. 교과부는 교사들이 학생 자살과 우울증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위기관리매뉴얼’을 만들어 올해 말까지 보급할 계획이다.

학생 자살자는 2005년 135명, 2006년 108명, 2007년 142명, 2008년 137명 등 증감을 반복하다 지난해 처음으로 200명을 넘어섰다. 2008년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자살은 10대 사망원인 중 교통사고(23.6%)에 이어 2위(22.1%)다.
예나 기자 yena@donga.com

 

 

17년 만에 살아난 상지대 괴담, 김문기 재단    -한겨레21

1988년 상지대 입학해 총학생회장·노조위원장을 지낸 진광장씨가
김문기 전 이사장 복귀에 반대해 20여 년 동안 농성을 벌여온 이유

이빨에 엉겨붙은 엿가락처럼 끈질기게 질퍽거린다. 더위는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진광장(41)씨의 코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흐른다. 그의 왼쪽엔 대학생, 오른쪽엔 교수들이 앉아 있다. 모두 축 늘어져 있다. 폭염을 면할 가망은 없다.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후문 담벼락엔 그늘이 없다. 늘어앉은 교수·학생·교직원들은 파르라니 머리를 깎았다. 삭발했다. 뙤약볕은 모기처럼 맨살을 파고들어 찌른다. 얇은 펼침판을 머리 위에 올려본다. 그들이 지닌 유일한 무기다. 그들이 지금 맞서 싸우는 것은 더위만이 아니다. “부패 인사 김문기 복귀 반대.” 펼침판에 적혀 있다.

사분위는 정녕 김문기 복귀 추인하나

“김문기가 우리를 가만두지 않아요.” 전국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 8월4일 오후, 한증막 같은 정부청사 앞 도로에 자청해 나앉은 이유를 진씨는 그렇게 설명했다. 그는 1988년 상지대에 입학했다. 과 학생회장을 거쳐 1991년 상지대 총학생회장이 됐다. 1996년 졸업 뒤 교직원이 됐다. 지금은 상지대 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다. 대학 입학 이후 20여 년을 ‘김문기 문제’로 농성하며 지냈다. 이번 여름도 예외는 아니다. 청와대, 여의도, 세종로, 그리고 강원도 원주의 캠퍼스에서 동시다발로 철야농성 중이다.

농성의 이유는 간단하다. 김문기 전 이사장이 상지대를 다시 장악하려 한다. 그 역사는 장구하다. 1993년 부정입학 등의 혐의로 당시 이사장이던 김씨가 구속됐다.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임시이사’ 체제가 됐다. 교수·교직원·학생은 물론 지역 시민단체와 동문들의 노력으로 2004년부터 ‘정식 이사’를 선임해 완전한 정상화를 꾀했다. 그런데 김씨가 이를 무효화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7년 대법원은 김씨의 편을 들었다. “임시이사들이 정이사를 선임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 판결로 2003년 12월 정이사로 뽑힌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이사,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 9명이 자격을 잃었다.

정이사를 새로 뽑을 권한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산하 자문기구인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로 넘어왔다. 노무현 정권 말기, 1기 사분위는 상지대 정이사 선임을 계속 미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새로 구성된 2기 사분위에는 보수 성향 인사가 대거 참여했다. 2기 사분위는 지난 4월, 파국을 알리는 결정을 내렸다. ‘종전이사’가 5명, 교육부가 2명, 상지대 구성원이 2명의 정이사를 추천하도록 했다.

문제는 사분위가 ‘종전이사’를 1993년 ‘임시이사 체제’ 이전의 이사, 즉 김 전 이사장 시절의 이사라고 해석한 데 있다. 기다렸다는 듯, 김씨는 자신을 포함한 5명을 정이사 후보로 사분위에 제출했다. 1.5~2배수의 후보를 추천하는 관행조차 무시했다. 그는 지난 6월, 상지대 근처에 ‘종전이사 사무실’ 개소식까지 열었다. 사분위가 이를 추인하는 순간, 김씨는 17년 만에 상지대에 복귀하게 된다. 사분위가 언제 어떻게 그 결정을 내릴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설사 김씨를 배제하더라도 그를 따르던 전 이사들이 다시 정이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농성은 그 한복판에서 펼쳐지고 있다.

진씨는 지난 20여 년의 상지대를 지켜봤다. 치악산 자락의 한갓진 캠퍼스에서 처음 맞이한 봄날을 그는 기억한다. 재수 끝에 지방 후기 대학에 합격했다. 입학 첫해, 두 사람이 한방에서 자면서 월 11만원을 내는 하숙방에 살았다. 처음에는 학교에 대해 특별한 애착이 없었다. “이 대학을 내가 왜 다니냐는 심정이었죠.” 신날 것 없는 동급생끼리 잔디밭에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는데, 캠퍼스가 일순 소란에 빠졌다. 학생들이 대학 본관에 몰려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김문기 대학’은 아내가 이사, 사위가 실장

‘광주 청문회’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총학생회가 광주 망월동 묘역 참배를 위해 관광버스를 불렀다. 계약까지 마쳤는데 돌연 버스회사가 차를 보내지 않았다. 학교 당국의 압력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민에 빠진 신입생 진광장은 “영문 모르고 영문학과에 들어온” 자신의 대학 생활이 심상치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자기 대학 이사장이 누군지 아는 학생은 별로 없잖아요. 대학은 총장 중심으로 돌아가거든요. 그런데 상지대에선 총장 말고 이사장 이름만 회자됐어요. 김문기와 그 친인척들이 대학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거든요.” 당시 상지학원 이사장 김문기씨는 아내(이사), 사위(총장 비서실장), 매제(전문대학장), 8촌(교무과장·한방병원 총무과장), 외사촌(주임·교직원), 문중 인사(회계과장·서무과장) 등을 두루 핵심 요직에 앉혔다.

서울 인사동에서 가구업체를 운영하며 큰돈을 번 김씨는 1973년 12월 상지대와 인연을 맺었다. 운영난을 겪던 원주대학이 폐교되자, 박정희 정권은 지역 출신의 사업가 김씨를 관선이사로 파견했다. 임시 이사장이 된 그는 1974년 기존의 ‘청암학원’을 ‘상지학원’으로 개명했다. ‘상지학원, 상지대학교 진실규명 및 설립자 학교 찾아주기 운동본부’(www.sangjiun.net)라는 홈페이지는 그의 치적을 알리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주변의 요청을 받아들여 어려움에 빠진 지역 교육기관을 인수했고, 이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는 등 학교 창립과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상지대는 ‘김문기의 대학’이므로, 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뭐 이런 대학이 다 있나 싶었죠.” 진씨는 ‘김문기의 대학’ 시절을 잊을 수 없다. 캠퍼스엔 ‘성냥갑 건물’뿐이었다. 성냥갑처럼 생긴 똑같은 건물 5개가 늘어서 있었다. 설계비를 줄이려고 같은 도면의 건물 여러 개를 한번에 지어올렸다 해서, 지금까지도 ‘김문기 대학’의 유물처럼 여겨진다. 고등학교에도 없는 재래식 화장실이 ‘김문기의 대학’엔 있었다.

여러 지방대 가운데 유독 상지대에서 학생운동이 발달한 이유가 바로 그 캠퍼스에 있다고 진씨는 생각한다. “처음엔 열악한 학교 시설에 정서적 반감을 느끼다, 그 이유가 족벌 운영 구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대학과 사회문제에 눈을 뜨는 거죠.” 황량한 캠퍼스 가운데도 그가 마음에 담아둔 곳이 있다. 본관 옆 오르막길이다. 학생들은 그곳을 ‘해방뜰’이라 불렀다. 모든 집회가 해방뜰에서 열렸다. 적어도 1천 명 이상, 많으면 3천여 명이 교내 집회에 참가했다. 요구사항은 항상 비슷했다. ‘김문기 족벌 경영 반대’였다.

“강의실 의자를 들어내 수업을 거부하고, 대신 본관에 몰려가 점거 농성하고…. 학기의 시작과 끝이 ‘족벌재단 퇴진’이었어요.” 그 무렵 학생운동권에 기승을 부리던 ‘NL-PD’ 정파 다툼조차 상지대에선 힘을 잃었다.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차이가 있긴 했지만, 김문기에 대해선 아무 차이가 없었거든요.” 옛 생각이 나는 듯 진씨는 살짝 웃었다. “차이라고 해봐야, 이사장실 점거 뒤에 사무실 집기를 밖으로 뺄 거냐 말 거냐를 두고 논쟁한 정도?”

그것을 ‘정상적인 대학 생활’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 역시 정상적이지 않았다. 1993년 4월, 검찰은 김문기 당시 이사장을 구속했다. 현직 국회의원이던 그는 공금횡령과 부정입학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이듬해인 3월 대법원은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공금횡령에 대해선 무죄, 부정입학은 유죄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좌파들이 부패 비리로 나를 몰아세워 쫓아냈지만, 1995년 사면·복권으로 그 혐의를 모두 벗었다”고 주장한다. 사면·복권이 과거의 죄를 사하는 것은 아니고, 대법원까지 항소했음에도 부정입학 혐의를 인정받았으며, 여당 3선 의원의 유력 정치인에게 이례적으로 실형까지 선고한 일은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다.

» 지난 8월4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후문 앞에서 농성 중인 상지대 구성원들.

김문기 이후 민주대학 17년

다만 진씨가 보기에도 상지대 구성원들이 김씨를 ‘쫓아내려 했던’ 것은 맞다. 진씨가 총학생회장을 맡았던 1991년, 열악한 학내 식당 문제를 해결하려고 학생회 자치 식당을 만든 적이 있다. “학내 식당에선 1년 내내 카레밥과 자장밥이 나왔어요. 하는 수 없이 학생들은 모두 시내로 나가 밥을 먹었죠.” 그러나 학교 당국은 학생들이 마련한 식당을 포클레인을 동원해 부숴버렸다. ‘상지대 용공조작 사건’도 유명하다. 1986년 강사 채용에 1천만원을 요구한 비리가 밝혀져 김씨가 궁지에 몰렸다. 그해 10월14일 밤 본관 앞에 “김일성 수령님” “가자, 북의 낙원으로” 등의 내용을 담은 유인물이 뿌려졌다. 훗날 학생과 직원의 양심선언과 경찰 조사 결과, 불온 유인물이 학교 쪽 교직원들에 의해 제작·살포됐음이 드러났다. 학교가 학생들을 ‘빨갱이’로 엮으려 했던 것이다.

김씨는 이런 일에 직접 개입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사장으로 취임한 1978년 이후 10여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를 열지 않았다. 교수·교직원·학생 등은 물론 다른 이사진까지 배제하고 사실상 혼자서 학교를 운영한 셈이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김씨의 책임을 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 구성원 다수가 그를 반대한 것도 인지상정이었다.

김씨가 구속된 1993년 이후, 진씨가 일하는 상지대는 거대한 허물 벗기를 도모했다. 이돈명·변형윤·한완상·강만길·김성훈 등 법조계와 학계의 명망가들이 이사장과 총장에 취임했다. 지역사회에 뿌리를 두고, 녹색 패러다임에 입각한 새로운 청사진을 만들어 대학을 혁신했다. 1996년 교직원이 되어 입학 업무를 맡아봤던 진씨는 “‘이제 상지대는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이 아니다’라고 고등학교 진학 교사들이 평가할 때마다 뿌듯했다”고 말한다. 1992년 114명이던 교수 인원은 2010년 현재 360여 명으로 늘었고, 재학생도 1500여 명에서 8천여 명으로 늘었다.

가장 큰 혁신은 민주적이고 투명한 대학 운영에 있다. 교수협의회·교직원노조·총학생회·총동문회 등이 총장 후보를 추천하고 이사회에서 승인받는 제도를 정착시켰다. 매년 대학 본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총학생회가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내년 등록금을 책정하고, 이와 연동해 교수·교직원의 임금을 책정한다. 결산 자료는 투명하게 공개한다. 상지대 홈페이지에 가면, 예·결산 자료는 물론 이사회 회의록까지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진씨는 “이런 대학은 한국 어디에도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말 그대로 ‘민주대학’이다. 진씨는 “궁극적으로는 시민·지역사회에 뿌리를 두고 개방적으로 운영되는 ‘시민대학’을 지향했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이사회 구성을 다수가 바라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사진의 학교 출입을 막을 겁니다”

사분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은 그런 꿈을 비웃고 있다. 김 전 이사장이 통치한 15년과 구성원들이 공동 운영한 17년을 맞바꾸려 하고 있다. 진씨는 “이명박 정부가 교육비리를 척결하겠다고 공언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상지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김씨가 복귀한다면 어찌 될까. “그것으로 파국입니다. 우리는 이사회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이사진의 학교 출입을 막을 겁니다.” 요즘 8천여 명 상지대 학생 가운데 3천여 명이 김씨의 재단 복귀 반대 집회에 꼬박꼬박 참가하고 있다. 상지대는 지금 30년 전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개인의 대학’이 아닌 ‘모두의 대학’을 만들어보겠다며 마음을 모았던 교수·교직원·학생들의 성취도 가뭇없이 사라지게 생겼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