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월례포럼 의견서

 

20119월 일

김태균(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상임대표)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월례포럼 의견서 제출 방법은 구체적인 현실로부터 교육이라는 핵심적 개념을 추출해 가는 즉 구체에서 추상으로라는 방식을 취할까 한다.

한국 교육 정책이 무엇이고 이러한 정책으로부터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라는 공정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아이들이 처해져 있는 현실이라는 구체적 방법을 통해 핵심적 개념이 교육정책의 장단점이 무엇인가?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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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혁 정책에 대한 반성적 검토

저자의 성찰적 반서와 새로운 대안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난 20여년간 지속적으로 유지해온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정책의 장단점은 무엇이었고 이런 정책의 기본 입장/방향/이념은 수정되어야 하는 것인가. 수정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수정되어야 하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20여년간의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 정책의 장단점을 논하기 이전에 지난 20여년동안 우리의 아이들이 어떠한 위치에 놓여져 있고 무엇을 고민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나는 27시간30분 공부하고 20시간30분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 200211월 자살한 어느 초등학생의 유서

공부 힘들어서 자살하는 사람들.. 다 남이야기 같았어. 하지만 아니야.

공부공부공부공부. 좁디 좁은 교실에 선풍기4대 히터2. 40명이 넘는 아이들.. 같은 곳에서 각기 다른 재능을 지닌 아이들이 오직 한가지만 배우고 있었어. “대학 가는법”. 슬펐어. ……내가 죽는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거야. 선생님들의 강력한 몽둥이도,,선생님들의 강력한 두발규제도,,선생님들의 공부공부소리..사회의 공부공부공부공부,,, ……난 사실 평범한 여중생일뿐이야.

노래 부르길 좋아하고, 그림 그리길 좋아하고, 수다 떨길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하지만 사회는 내게 그걸 바라지 않아. 같은 머리 같은 옷 그리고 같은 공부. 쫍디 쫍은 교실에 아이들을 구겨 넣고, 선풍기4대와, 히터2. 그리고 선생님.. - 20074월 자살한 어느 중학생의 유서

어른들은 그들이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보지 않고 그렇게 죽어간 학생들만 욕했습니다. (중략)

저는 지금 막 교실을 뛰쳐나왔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지옥에서 부르는 소리 같았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묵묵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이 친구들은 감정도 없는 사람 같고 다 똑같아 보입니다. 전혀 개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 친구들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어른들이 밉습니다. (중략)

반 학우들아, 너희들은 죽더라도 대학에 가서 죽어라. 나는 단지 죽음을 너희보다 빨리 불렀을 뿐이다. 잘 있거라.

- 19891013, 서울 면목고 3학년 김모 학생이 남긴 유서

 

20년 동안 우리의 아이들은 공부에 의한 스트레스로 인해 초등학생에서부터 년령 구분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음 표에서도 확인이 되듯이 우리의 아이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은 공부시간에 찌들어 왔으며

 

 

이러한 장시간 공부시간 등으로 인해 365일중 370여명이 넘는 즉 하루에 한명 이상의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 통계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이유의 대부분이 공부 때문이라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대 부분의 삶의 시간을 공부로 채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살의 이유의 대부분이 공부로 인하여 자살했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결국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에서 전개된 교육 정책으로 인해 이렇게 많은 우리의 아이들을 죽음의 낭 떨어지로 내 몰았다면 그것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던 그것이 아니던 이 말도 안 되는 살인에 장단을 즉각 멈추고 이에 대한 분명한 책임 및 규명이 필요하다.

 

교육당국은 공급자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는 수요자로 규정한 지난 20여년간의 한국 교육 정책의 실상은 OECD국가 중 최고의 살인국이며 최고의 학습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불명예뿐이다.

 

결국, “경쟁만이 효율성을 극대화 할수 있다라는 기본적 철학하에 자율/경쟁/다양화 및 선택으로 표현되고 있는 작금의 교육정책이 우리의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면 즉각적으로 그리고 시급하게 전환이 필요하다. 하루 늦어지면 또 우리의 아이가 1명 이상이 죽어가기 때문이다.

 

 

 

 

 

 

 

 

 

 

 

Q2. 학교 선택제를 위한 고교 유형 다양화 정책에 대한 반성적 검토

1) 학교 선택제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현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고교유형의 다양화 정책의 공과, 또는 장단점은 무엇인가?

20 이정책이 차기 정부에서도 지속, 확대되어야 할 정책인가, 아니면 축소 혹은 폐지되어야 할 정책인가? 축소, 폐지해야 한다면 그 대안적 방안은 무엇인가?

한국의 교육 체계는 서열화 되어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유치원에서부터 초 고교가 대학 서열화에 종속되어 살인적 경쟁 체제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체제속에 고교 유형의 다양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제출되는 각종 고교 평준화 파괴 정책은 결국 입시 명문고 중심의 서열화로 갈 수밖에 없으며 수평적 다양화는 통상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구조이다.

 

특히나 자율형 사립고의 형태를 보면 아래 표처럼 계급 재생산 기구로 전락하여 입시 명문 중심의 가진자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와 경쟁에서 밀리는 노동자 민중의 자녀들이 다니는 비명문고로 구분될 뿐이다.

 

1년에 500만원이 넘는 수업료를 내고 자율형 사립고를 졸업하고 1천만원 가까운 대학 등록금을 내면서 4년동안 대학을 졸업시켜야 한다면 과연 이 나라 어느 노동자 민중이 이를 감당할수 있겠는가?

 

결국,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는 한국 사회 교육 현실에서 고교 유형 다양화 정책은 대입 입시 명문 고교를 만드는 길이며 계급 재생산 구조를 고착화 시키는 길뿐이다.

 

고등학교 중심의 중등교육의 개혁은 결국 서열화 되어 있는 대학의 구조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조건속에서는 조삼모삼듯이 그 어떠한 대안도 될수 없으며 대학 서열화 구조의 변화가 아닌 현재의 상황에서는 보편적 교육의 논리속에 고교 평준화를 강화하는 길뿐이다.

 

결국 중등교육의 정상화는 대학 서열화 폐지라는 고등교육의 개혁과 맞물려 전개되어야 하며 이러한 전체 교육 개혁의 모습만이 현재 한국 교육이라는 정체모를 살인마로부터 우리의 아이들을 살리는 길인 것이다.

 

Q3. 책무성을 묻기 위한 도구로서의 국가학력평가시험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

1) 현재 전집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잇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시험을 유지, 발전 시킬것인가 아니면 과거처럼 표집을 대상으로 한 시험으로 전환시킬 것인가?

2) 책무성을 묻기 위한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전집평가)를 지속할 경우 제기되는 문제점(단점)을 보완할 현실적 대안은 무엇인가?

3) 교사, 학교, 교육청의 책무성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험성적이외의 어떠한 대안적 방안들이 있을 수 있는가?

이명박 정권 출범과 동시에 전집의 형태로 일방적 진행된 일제고사에 대해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는 전면적 반대 투쟁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 출범과 동시에 실시된 일제고사는 전국적으로 동일한 객관식 시험문제를 가지고 동일한 날 전국의 모든 학생이 시험을 치루는 것을 말한다. 일제고사를 실시하면서 교육당국은 일제고사 실시 목적을 교육과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과목표와 내용들을 학생들이 정확하게 학습하고 있는지를 파악 및 학력 수준을 높이기 위함이라 주장 하였다. 그러나 3년간의 일제고사는 상술한 목적의 정당성이 옮고 그름을 떠나 교육 당국 스스로 주장하고 있는 목적에서도 크게 다르게 운영이 되었다.

 

특히나 일제고사를 통해 전국의 학생들을 1등에서 꼴등까지 줄세우기와 함께 교원평가제를 통해 전국의 교사들을 1등에서 꼴등까지 줄세우기, 그리고 이러한 일제고사와 교원평가제의 결과를 가지고 학교 관리자들을 줄세우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 성격의 재정 지원 방식은 결국 교육 현장인 학교의 구성원 모두를 1등에서 꼴등까지 줄 세우는 형식일 뿐이다.

꼴등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꼴등 덕분에 꼴등이 아닌 이가 꼴등이 되고 이렇게 꼴등을 없애 나가면 결국 1등이었던 이가 꼴등이 되는 단순한 진리를 일제고사 당국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공교육 전체 재정 보다 사교육 시장에서 도는 비용이 더 많다고 한다. 왜 이렇게 사교육 시장이 활개치고 사교육 비용이 공교육 비용을 넘고 있는 것일까?

교육 당국은 공교육이 문제가 많기 때문에, 공교육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만족도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오는 정책이 학교에 외부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진행하고 방과후 수업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만족도를 주고, 이도 모자라 일제고사를 통해 교원평가제를 통해 학교의 성적표를 공개해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해 준다고 한다.

 

정말로 학교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학부모가 학원과 과외 등 사교육 시장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내 몰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말도 안된다. 아무리 공교육이 완벽해도 아니 저 강남의 수천만원의 과외비를 받는다는 선생님을 모셔와도 학교에서 1등과 꼴등을 줄세우는 경쟁 교육이 존재하는 한 사교육는 거머리처럼 살아날 수 밖에 없으며 모두가 죽는 무한 경쟁으로 학생과 학부모는 내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살인적 무한경쟁에 있어 일제고사는 한 몫 톡톡히 하고 있다. 전국의 모든 학년의 학생을 동일한 시험을 통해 1등에서 꼴등까지 줄세우는 일제고사가 있는 한 사교육비는 줄수가 없다. 경쟁 교육 시스템이 있는 이상 한국의 교육은 경쟁모드일뿐이다.

 

교육에서 평가는 작년의 우리의 아이가 올해 얼마만큼 성장했고 국가와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교육에 얼마만큼 따라왔는가를 평가할 때 만이 그 의미를 찾을수가 있다. 이러한 성장 평가는 결국 교사 및 상호 학생 등 학교 구성원들에 의한 평가체계만이 가능하다. 전수 방식의 일제고사만이 아니라 표집 방식의 일제고사를 뛰어넘어 성장 평가를 올 곧게 하기 위한 학교 구성원 중심의 평가 체계를 시급하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Q4. 교육 개혁의 핵심 대상에 대한 비판적 검토

1) 위 저자의 입장과 한국의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 교육개혁의 대상과 방향 그리고 바람직한 전략은 무엇인가?

2) 차기정부에서 반드시 추진해야 할 교육 개혁 과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국 교육 개혁의 대상과 방향 그리고 바람직한 전략을 이야기 하지 전에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 해보자

 

우선 첫 번째가 국가가 교육을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교육 기본법 제 9조를 보면 국가는 유아교육·초등교육·중등교육 및 고등교육을 하기 위하여 학교를 둔다.”로 명시하고 있다. 즉 국가는 유아 교육을 위해 학교를 둔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유아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기관은 불행하게도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고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하다.

 

한국의 0-5세까지 영육아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 체계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이라는 보육기관으로 이중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 전체 영육아 중 70% 이상이 어린이 집이라 불리는 보육기관에 다니고 있으며 나머지 30% 20%가 넘어가는 유치원이 사립 유치원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공립이라 불리는 유치원은 겨우 전체 유아보육 기관중에 10%도 채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2012년부터 시행 예정인 만5세 누리과정을 보면 사립 유치원과 보육 시설에도 동일한 교과과정을 요구하고 재정을 지원한다고 하면서 유아보육교육 현장에서의 자본 진입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중 논란과 함께 자사고 확대 정책을 보면 현 정부가 교육을 책임질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이러한 국가의 방관적 교육 포기 정책하에서 이명박 정권은 지난 12월 서울대 법인화 법을 통과 시키면서 그나마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고 있던 국공립 대학마저 시장에 팔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두 번째는 가진자 중심의 교육 내용 개편 움직임이다.

임진왜란때 수많은 왜적을 물리친 사람은 이순신 장군 한명이었고, 3.1운동 만세를 했던 이는 유관순 누나 한명이었고, 공산당이 싫은 사람은 이승복 어린이 한명이었다는 소영웅주의 교육 내용이 이명박 정권 출범과 동시에 고등학교 근현대사 논쟁으로, 민주주의 개념이 자유민주주의로 대치가 되는 과정, 13년 사회경제 교과서 개정 내용에 노동자에서 자본 중심으로의 개편 논쟁등에서 교육의 내용이 보편적 객관적 내용에서 가진자 중심의 주관적 내용으로 개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 번째로는 서열화 되어 있는 대학 중심으로 유아교육에서부터 중등교육 까지 살인적 경쟁 모드라는 점이다.

1등 대학을 가기 위해 1등 고등학교를 가야 하고 1등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1등 중학교를 가야 하고 이를 위해 영어 유치원을 다녀야 하는 현실이 바로 한국의 교육 현실이다. 이러한 살인적 경쟁에서 발버둥 치면 살아남기 위해 허덕이는 아이들, 그냥 그렇게 시계추처럼 학교에 있는 아이들, 이러한 경쟁 시스템을 견디지 못해 하루에 한명 이상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의 자화상이다.

 

최저임금에도 미치는 못하는 임금을 받아가면서 급식비 조차 내지 못하면 끙끙대는 이 땅의 학부모들이 있다. 1년에 5백만원 가까이 내는 자사고에 보내지 못해서, 1년에 1천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 땅의 학부모들이 존재한다.

상술한 내용이 바로 한국의 교육 현실이며 개혁해야 될 대상이며, 개혁의 내용이다.

아이들이 더 이상 죽지 않고 학부모들이 더 이상 교육비에 허덕이지 않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책임지는 교육 이를 위한 정부의 모습이 바로 개혁의 방향이다.

 

대학을 평준화 하고 현재의 대학 입시를 자격고사로 전환함으로써 경쟁모드를 협력의 모드로 전환시키는 슬기로움만이 교육비에 허덕이는 경쟁교육에 의해 죽음으로 내 몰리는 이땅의 학생과 학부모를 살리는 유일한 교육 개혁의 내용이다.

Q5. 빈곤소외 계층 아동을 위한 교육정책 방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

1) 저자가 위에서 제시한, 빈곤소외 계층 아동들을 위한 좋은 교육의 조건은 한국적 상황에도 그래도 적용 되는가 ? 추가로 조건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어떤 것인가?

2) 현 한국적 상황에서 빈속 소외 계층의 발생 원인은 무엇이고 이에 대한 예방과 해결책은 무엇인가? 빈곤소회계층 아이들에 대한 교육 정책은 어떻게 수정/개선되어야 하는가?

 

동물에게 자기 먹을 것을 빼앗으면 주인에게도 덤빈다.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바로 먹고 자고 그리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일이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공동체 구조속에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최소한의 동물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함이다.

 

만약 이러한 동물적 인간의 욕구가 사회나 공동체로부터 보장이 안된다면 아니, 사회나 공동체로부터 이러한 동물적 인간의 욕구가 파괴된다면 그 사회나 공동체는 사회나 공동체 구성원으로부터의 공격(혁명)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가진자들의 위한 이명박 식 교육 정책, 양극화를 고착화 하는 이명박 식 교육정책하에서는 빈곤소외 계층 아동을 위한 교육 정책이란 있을수가 없다.

특히나 집단적 반발을 무마하고자 취하는 개량적 의미조차도 현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하에서는 기대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빈곤소외 계층 아동을 위한 교육 정책은 현 이명박 식 가진자를 위한 교육 정책,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하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면적 사회 변혁과 맞물려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러한 판단은 단지 빈곤소외 계층 아동의 교육정책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노동자 민중 자녀의 교육 정책 또한 마찬가지로 적용이 됨을 의미한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보자면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오는 12년 정권 교체를 통해 이 문제가 가능한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필자는 회의를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여러 가지 정책 중 한 가지기 때문에 정책 전환을 통해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해소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의 최후의 위기관리 프로그램이기에 신자유주의 정책의 종말이 사회 체제 종말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