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교육 이야기 첫번째

 

김태균(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상임대표)

 

[노동자의 교육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노동자와 교육, 나와 교육 문제를 가지고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거창한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뜻이 아니라 공장에서, 사업장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정말로 순전히 순수한 노동자들에게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잡담하듯이 함께 논의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라는 것으로 표현되는 이 모든 것이 너무 어렵다는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그렇지도 않다 라는 점을 보여 주고 싶어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하면 고용된 노동자로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그것도 고용에 대한 걱정이 없는 정규직 노동자로서 말이다.

이렇게 고용된 노동자로서의 우리는 보다 많은 임금을 보다 적은 노동시간을 가능하면 낮은 노동강도를 위해 노동조합 활동도 하고 회사 활동도 한다.

가능하면 많이 받은 임금으로 먹고 자고 싸고 입을 것 그리고 아이들 교육비와 노후 보장을 위해 사용이 되며 줄여진 노동시간으로 인해 집에서나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늘어난 시간을 활용하기를 원하며, 놀 때 쉴 때 신나게 놀고 쉬면서 내일의 출근을 위해 우리는 노동강도의 저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나라에서 평범한 가정의 가계비 구성을 보면 자녀들 교육에 쓰이는 비용이 먹는 것에 사용되는 비용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즉 가계 비용 중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통계가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피부적으로 느끼는 정도는 30%가 넘어가는 것 같다.

결국, 머리에 붉은 띠 매고 힘차게 흩어지면 죽는다~~~” 라는 파업가를 부르면서 임금을 올리고, 노동강도를 저하시키고,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얻은 투쟁의 성과물로 우리는 자녀들의 교육비에 사용한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모두는 공장에서 그리고 회사에서는 당당한 노동자로서 존재하고 노동조합 투쟁조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우리들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좋은 학원 보내고 가능하면 좋은 대학 보내는 즉 가능하면 좋은 선생님들에게 맡기면 자녀들에 대한 교육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회사와 자본의 노동자 상호간에 경쟁을 통해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키고자 하는 노조 탄압 정책에 대해서는 목숨 걸고 투쟁을 하지만 우리 자녀들에게만은 친구들을 누르고 1등이 되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더 웃기지도 않은 것은 우리는 노동조합 교육에서 노동자는 역사 발전의 주체이며 새로운 사회의 동력이다라고 하는 강사의 발언에 힘차게 박수를 치면서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공부 못하면 노동자가 될 것이다라는 협박을 통해 살인적 경쟁을 강요하며 노동자가 사회적 패자인양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나처럼, 노동자처럼 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그리로 경쟁에서 승리(?)를 위해 자본가들이 써먹는 상호간에 경쟁을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일까?

1년은 365일이다. 이중 토요일과 일요일 등을 빼면 대충 260여일이 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1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수는 대략 40만 명이라 한다.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수는 2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수치 중 한 가지인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의 수가 1년에 300명에 가깝다는 것이다.

1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300명에 가까운 우리의 자녀들중 90%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은 본인의 진로와 공부 등의 문제로 부모와의 갈등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충격적인 통계가 있다.

결국,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죽음의 낭떨어지로 내 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사회와 교육체계가 죽음을 거부하고 있는데 부모인 우리들에 의해서 우리들의 자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도 공장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거리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그리고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반대하고 이에 대항하여 투쟁을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우리의 자녀들 앞에서는 신자유주의 전도사인양 모습이 돌변한다는 점이다.

 

서론이 길었다. 필자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매월 발행하고 있는 정세와 노동[노동자의 교육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 생각이다. 물론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지면을 할애해 준다면 말이다.

[노동자의 교육이야기]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글을 전개할 생각이다.

우선적으로는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시장화 경쟁 교육 정책에 대해 노동자들과 공유하는 방식이다. 대한민국 교육 정책은 정부수립과 동시에 철저하게 경쟁 시스템 중심이었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인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승자독식의 진리가 통용되는 학교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은 바로 자본과 정권의 경쟁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철저하게 서울대 중심으로 서열화 되어 있는 한국의 고등교육 체계와 이러한 대학 서열화에 조응한 초중고교 과정 및 유아 교육 시스템은 0세부터 20대까지를 아우르는 인생의 황금기(아니 좀 더 이야기를 해 보자면 태교부터 철저하게 경쟁 교육 시스템을 적용 받고 있다. 배속에 있는 아이의 승리를 위해 태교로 영어회화를 들려 주던지 아니면 영어권 나라에 가서 출산을 한다는 모습은 결코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일이 아니다.)를 철저하게 1등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 교육 정책의 희생자는 직접적으로는 당사자인 우리의 자녀들일 것이며,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 역할을 하고 있는 이는 바로 우리 노동자들이자 학부모들일 것이다. 이에 [노동자의 교육이야기]은 대한민국에서 경쟁교육 정책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고 현재 이명박 정권하에서 경쟁교육 정책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자 한다.

 

두 번째가 바로 시장화 교육 정책이다.

교육은 국민국가 단위에서 국가가 그리고 사회와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기본적 공공영역이다. 이러한 교육의 위치는 그 사회가 어떠한 경제 시스템을 가지고 그리고 어떤 사회구성체적 성격인지와 독립적으로 가져가야 할 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다수가 소수에 의해 착취를 당하는 계급사회에서의 교육의 영역은 개량의 영역으로 다수 계급의 역동성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 유럽 중심의 교육 복지 축소 움직임을 보라. 그리고 현 이명박 정권의 교육 정책을 보라.

다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되지 못하고 단지 소수 자본가 계급의 이윤을 위해 무정부적으로 생산되고 창고에 쌓여만 가는 생산물로 인해 스스로 괴멸해 가는 자본주의 최후 단계에서 교육의 영역은 철저하게 자본의 안식처일 뿐이다.

더 이상 삶의 가망이 없는 이에게 산소마스크를 다시금 씌워 그 한 많은 삶을 연장하는 것처럼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한 계급사회의 황제로서의 자본주의 사회가 그 끈질긴 삶을 연장하고자 공공적 기제인 교육의 영역조차 시장의 논리로, 이윤추구의 장으로 그 생명력을 연장해 가는 모습을 [노동자의 교육이야기]에서 이야기 할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급사회 체제 유지를 위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 강화하기 위하여 교육의 영역을 저들은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할 생각이다.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대립의 지점은 가장 근본은 경제적 영역이요, 이에 조응하는 정치적 영역과 이를 뒤받침 해주는 이데올로기적 영역 등 3가지 지점이 존재한다. 이중 이데올로기적 영역은 가랑비에 속옷 젖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며 이에 대한 수단으로서 교육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물론 역으로 계급사회 최후의 단계인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교육의 영역은 계급을 소멸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영역으로 그 역할을 다 할 것이지만 말이다.

대한민국 초등학교 사회책을 보면 사회적 혼란이라는 주제가 나온다. 사회적 혼란을 학습 하면서 참고삼아 보는 사진이 바로 노동자들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힘차게 팔뚝질을 하는 혼란(?)의 모습이다. 그리고 또 다른 과정에서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집 풍경을 그리는 과정이 나오다. 커다란 거실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있는 집, 안방과 건넌방 그리고 또 다른 건너방이 두어개 있는 평범한(?) 집이 나온다. 그리고 이속에서 웃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이 나온다. 매달 월세를 내고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하는지에 대해 걱정하는 노동자들의 자녀들에게는 정말로 환상적인 집이 아닐수 없다. 나는 왜 이런집에서 살지 않는 것일까? 라는 자괴감을 떠나 우리 엄마 아빠는 왜 그래라는 부모에 대한 분노심과 적개심을 키워주는 교과서가 바로 우리의 자녀들의 가방 속에, 학교 사물함에 들어있는 교과서이다.

얼마 전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제작한 부모와 학부모라는 동영상물이 우리 모두를 자극 시켰다. 친구를 눌러야지만 승리할 수 있다는 현실에서 경쟁보다는 사랑을 강요하는 비 현실적 동영상은 살인적 경쟁이라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와 함께 토요일, 일요일 빼고 평균 하루에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살인적 경쟁 교육이 부모가 아닌 학부모로서의 우리 책임인양 규정하는 이 동영상의 효과는 많은 학부모들을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에게 보다 많은 경쟁을 강요하는 고묘한 효과를 만들었다.

 

그냥 마무리 하려고 보니 원고량이 적은 것 같아 한 꼭지 더 써본다.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에 투여되는 돈이 대략 20조원이 넘어간다고 한다. 이는 1년 공교육 예산에 투여되는 공교육비 보다 많거나 같은 금액이다. 그렇다면 결국 매년 대한민국은 40조원이 넘어가는 돈이 교육 현장에서 돌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사교육 시장에 대해 자본과 정권은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리고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거품을 물고 떠들고 있다.

사교육 시장이 왜 성장하는 것일까?

저들은 이야기 한다. 공교육 현장이, 학교가 제대로 아이들을 책임 있게 가르치지 못하게 때문에 학부모들이 학원으로, 과외로 우리의 아이들을 사교육 현장으로 내몰고 있다면서 공교육과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을 사교육 성장의 원인으로 지목을 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과연 사교육 시장이 성장하는 이유가 저들이 말하고 있는 대로 공교육이 부족해서 학부모들의 치맛바람 때문에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 되고 있는 것인가?

현재 서울 강남, 경기 분당 등 잘 나간다는 사교육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학교로 모셔오면 사교육 시장이 줄어들까? 잘 못 가르치고 부적격한 교사들을 퇴출하는 교원평가제를 엄격하게 도입하면 사교육 시장이 줄어들까? 학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학교 방과 후 수업 시간에 가르친다면 사교육 시장이 줄어들 것인가?

아니다. 아무리 드림팀으로 구성된 선생님들을 학교 교육 현장에 배치를 하더라도 현재의 교육 시스템 즉 1등부터 꼴등까지 갈라 치는 서열화 경쟁 교육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학교 현장에서 배우는 것 보다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빨리 배워 1등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교육 시장은 그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교육 시장을 줄이는 길은 공교육 현장에서 1등에서부터 꼴등까지 갈라 치는 경쟁 교육 시스템이 아니라 전체 학생들의 보편적 학습 수준 향상 속에 각각 개별성을 존중하며 특수성을 개발하는 교육 시스템으로 전환 될 때만이 사교육 시장은 줄어 들것이다.

사교육 시장 활성화는 공교육이 부족해서도 학부모들의 치맛바람 때문도 아닌 전적으로 공교육내 경쟁 교육 시스템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어째든 이제 매월 써야 하는 [노동자의 교육이야기] 한 달 치를 썼다. 물론 [정세와 노동] 편집팀에서의 허락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내 스스로 강제 하는 것보다 [정세와 노동] 독자들에게 지면을 통해 약속을 한 점이라 꾸준히 글을 쓸 것으로 예상이 된다.

나는 [노동자의 교육이야기]을 통해 경쟁화 교육, 시장화 교육 그리고 계급 유지 강화를 위한 이데올로기 공세로서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 할 생각이다.

그것도 저들의 말이 아닌 노동자의 말로서 투쟁의 현장에서 열심히 투쟁하고 집에 와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경쟁에서 승리하라고 다그치는 모습이 아닌 진정한 노동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노동자의 교육이야기]를 통해 나는 현재의 교육운동 진영내에서 다양하게 쟁점이 되고 있는 여러 가지 내용에 대해 소개를 해 볼 생각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교육의 영역이 계급사회에서 수단으로서 존재해야 하는지? 즉 이후 다수가 독재를 실현하는 그리고 무계급 사회로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교육의 영역은 노동자 계급의 재 생산 기지로서 이데올로기적 영역인지 아니면 교육의 특수성을 고려한 국가 권력과는 독립적인 영역인지.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은 단지 정책적 전환을 통해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체제의 문제이기에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과 함께 맞물려 가야 하는지.

서울대 중심으로 서열화 되어 있는 한국 현실에서 서열화를 무력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공립대 네트워크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방안이 있는지.

효율성 강화를 위해 경쟁기제가 필요한지 아니면 협동과 단결로도 효율성 극대화가 가능한지. 등등 교육운동 진영내 다양한 쟁점을 가지고 나는 [노동자의 교육이야기]를 쓸 생각이다.

그냥 무작정 지면 할애를 요청한 나의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대해 [정세와 노동] 편집팀에게 양해를 구한다. 그러나 꼭 공유해야 할 내용이고 꼭 써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가능하면 [노동자의 교육이야기]첫 번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쓰여 질수 있도록 [정세와 노동] 편집팀에게 다시금 양해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정세와 노동] 독자 뿐만이 아니라 공장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함께 노동자들과 고민하는 [노동자의 교육이야기]이 되었으면 한다. 많은 지적과 이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