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4개 학부모단체 연대 논평]

비상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당국을 비판하며
학생 안전이 최우선인 비상 교육 체제 도입을 촉구합니다!


이번이 다섯 번째 개학 연기입니다. 1주, 2주, 온라인 개학, 순차적 개학 등 다양한 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소통의 기본도 지키지 않는 일방 통행, 준비되지 않은 현장, 일관성 없는 교육 행정을 지켜보면서도 학부모들은 참고 기다렸습니다. 모두가 처음 겪는 초유의 비상 상황이니 비판보다는 협조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고, 세계적으로 칭찬을 받는 국가 방역 체계와 대응 능력이 교육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교육당국은 대한민국 방역 기준에서 크게 벗어난,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무능한 교육당국에 아이들의 안전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교육당국이 그동안 보여준 실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교육 법령과 입시 제도를 앞세워 국가 방역 체제 밖으로 이탈한 것입니다.
이태원 방문자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 언제 어디서든 집단 감염 사태는 재발될 것입니다. 문제는 연휴 이후 잠복기인 최소 2주일이 지난 후 등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방역 전문가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교육부가 등교를 밀어붙인 데에 있습니다. 이는 수업일수, 수업시수, 수능 일정, 수시 일정 등 코로나19 이전의 교육 체제에서 어느 것 하나 바꾸지 않으려는 교육당국의 고집과 행정 편의주의에 기인한 것입니다. 대학입시와 수업일수에 쫓기지만 않았어도 무리하게 등교해서 내신과 모의고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는 학부모는 없었을 겁니다. 현행 입시와 교육 체제 하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학부모들을 앞세워 여론 뒤에 숨는 교육당국의 모습은 무능하고 비겁합니다.

둘째, 국가적 차원의 공적 책임인 돌봄과 안전을 학교 현장에만 떠넘긴 것입니다.
학교는 공공기관입니다. 공공기관의 방역 시스템 구축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국민의 안전한 환경 조성은 국가가 담당해야 할 영역입니다. 대상이 학생이라는 이유로 학교장과 교사들이 방역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현재 상황은, 주민의 감염 예방과 조치를 주민센터와 동장이 책임지라는 것과 같습니다. 교육부가 여러 관계 부처와 협력해 학교뿐만 아니라 구청과 보건소, 주민센터가 아동·청소년의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대책을 마련하도록 했어야 합니다.
돌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맡길 데가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등교를 시켜야 하는 것이 저출생 국가인 대한민국의 모순된 현주소입니다. 맞벌이, 한부모, 조손 가정 등 가정 상황에 관계없이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눈치보지 않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서울 지역 학부모단체들은 지금이라도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두기를 바라며 아래 사항들을 요구합니다.

1. 비상 교육 대책 기구를 중앙, 지역, 학교 단위로 가동시켜 주십시오. 기존 법령을 뛰어 넘는 중앙 정부 기구를 구성하고 모든 구성원(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참여하는 교육청 단위, 구청 단위, 학교 단위의 비상 교육 기구를 운영해야 합니다.

2. 고3 입시 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올해 입시에 재학생이 불리하지 않도록 촘촘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교육당국의 책무입니다. 비상 상황에 맞는 ‘비상 입시 대책’을 수립해 주세요. 수시 전형 학생부 기재를 2학년 과정까지로 제한하는 것과, 대학입시가 아닌 고교졸업자격시험으로 전환하는 방안 등 획기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3. 고3을 제외한 전 학년의 1학기 평가는 PASS/FAIL 방식을 적용해야 합니다. 학교별, 교사별, 가정의 온라인 시스템 상황에 따라 학습 격차 및 불이익을 당하는 학생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출결에 대한 벌점 등 징계 조치도 철회해 주세요. (전기고 선발 전형도 2학년 내신까지 적용하는 등 획기적 전환을 제안합니다)

4. 수업일수, 수업시수에 대한 재량권을 학교에 부여해 주세요. 지역 감염이 확산되고 있고, 학교별 특성(직업계 학교, 예술계 학교, 체육계 학교, 특수학교 등)에 따라 교육과정이 달라야 합니다. 특히, 비교과 창체 수업은 교육당국이 제공하는 온라인 콘텐츠로 대체할 것을 제안합니다. 국가 자격증 취득 과정처럼 필수 시청 시 완강 처리하면 됩니다. 해당 법령 상의 시수도 대폭 축소하는 등 융통성을 부여하고, 내용도 학년에 맞는 충실한 맞춤형 콘텐츠가 제공되길 바랍니다.

5. 1학기는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을 병행하고 학생이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학부모는 결코 방역전선에 아이들을 내몰지 않을 겁니다. 치료제가 개발되고 학교가 가장 안전한 공간이 될 때까지 교육당국은 원격수업, 선택 등교, 선택 급식 등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 주십시오.

6. 원격수업 취약 계층에 대한 대책을 촘촘하게 마련해야 합니다. 조손가정, 위기가정, 다문화 가정 등 학교 알리미 전달도 제대로 되지 않아 혼란을 겪고 있는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책을 지역사회와 연계해 촘촘하게 세워 주시기 바랍니다.

7. 돌봄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협력해 충분히 여건을 마련해 주세요. 어린 자녀가 있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돌봄이 필요합니다. 회사원, 교사, 의료인, 공무원 등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돌봄을 보편 복지로 책임져야 합니다. 학교와 지자체가 협력해 돌봄을 대폭 확대해 주세요.

8. 학교에 방역 전문 인력, 돌봄 보조 인력, 보건 전문 인력을 지원해 주세요. 무증상자가 대부분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직원이 발열 체크, 보건실 이동, 보호자 인계, 교실 소독까지 담당하는 것은 전문성과 안전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방역 전문가, 방문 간호사, 돌봄 보조 인력 등은 학교 밖에서 전문가들을 충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9. 학교 행정이 합리적으로 운영되도록 지침을 마련해 주세요. 교육과정은 학교 자율에 맡기더라도 기본적인 행정 지침은 필요합니다. 입어보지도 못한 교복 동복에 이어 하복 구매 알림이 오고, 학부모회 구성도 못했는데 급식모니터링위원과 수련활동위원, 시험감독위원 명단을 제출하라고 합니다. 현장에서 관습처럼 내려온 비효율적인 행정은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 학생에게도 해당됩니다. 면밀한 검토와 지침이 필요합니다. 또한, 형식적인 온라인 수업으로 기본적인 피드백 없이 방치된 경우와, 예술계 학교 등 일부 실기 중심의 사립학교가 등교를 못해 수업을 못했음에도 수업료를 모두 부담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의 수익자 부담 비용에 대해 합리적인 적용을 검토해 주십시오.

10. 비상 상황의 장기화와 재발을 대비한 온라인 학교자치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단위학교 학생회와 학부모회, 교직원회 등 온라인 학교자치 방안을 마련해 주세요. 학생회, 학부모회를 온라인으로 구성하고 의견 수렴 및 소통을 정례화해야 합니다. 설문조사 등을 활용한 원격 소통이 대면회의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온라인 교육으로 축적된 노하우를 학교 자치에도 적극 활용해 소통과 참여를 기반으로 한 교육 문화가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앞서가는 행정, 소통하는 행정을 실천하는
모범적인 교육청으로 우뚝 설 것을 기대합니다.


2020년 5월 15일

서울형혁신교육지구학부모네트워크, 서울혁신교육학부모네트워크,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학부모회(가나다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