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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2월 28일,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가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법인화가 국립대학의 존재이유 자체를 뒤바꾸는 중대한 변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추진과정은 비민주와 독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2009년 학생총투표에서 90%에 가까운 학생들의 반대 의사를 확인하였고, 2010년 노동자, 교수, 학생 단위가 서울대학교법인화 반대 공동대책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11년 서울대 비상학생총회의 결과 법인설립준비위원회 해체를 요구하는 본부점거농성이 25일 넘게 지속되었다. 하지만 정부, 국회, 본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법인화를 밀어붙였다.

대학본부와 정부는 법인화가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서울대가 법인으로 전환되면 국립대학의 굴레를 벗어나 대학이 자율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공무원 노동자들은 공무원의 신분을 박탈당했을 뿐 대학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얻을 수 없었다. 4월 10일 평의원회 공청회에서 한 노동자는 ‘공무원 신분을 벗어남으로 인해 대외 관련 부서와의 업무처리에 어려움이 있으며, 공무원 지위를 벗어난 직원의 직급 조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해 서울대는 12년을 일한 기성회 직원들마저 모두 8급으로 편성하여 노동자들을 차별대우하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법인화 이후 노동자들의 처우와 업무환경은 오히려 악화되기만 했다.

그렇다면 교수들과 대학본부는 연구와 교육의 자율성을 확보했는가. 4월 10일 평의원회 공청회에서는 외부자 위주로 구성된 이사회가 의결권을 수행하는 데 대한 교수들의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총장 직선제의 폐지 역시 1987년 이전 체제로의 회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정부 관료와 기업가 출신 일색인 이사회가 대학의 운영을 통제하는 기상천외한 구조는 대학본부가 이야기하는 자율성의 실체를 스스로 폭로한다.
심지어 법인화로 인해 국가의 재정 책임이 사라지면서 정부로부터 예산을 확보하려는 대학본부 관료들의 발걸음만 더 급해지고 있다. 안정적인 재정 바탕으로 한 자율성을 누릴 수 있다던 공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법인화 이후 서울대 구성원들은 학문공동체의 기반인 재정을 마련하는 데 급급해지고 있다. 재정 마련에 급급한 대학에서 학문의 자율성이 대체 어디에서 꽃필 수 있단 말인가.

법인화의 핵심은 결코 대학 구성원들의 민주주의와 자율적이고 안정적인 연구와 교육활동에 있지 않다. 법인화는 곳 국가가 고등교육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는 사실, 교육 관료와 자본이 대학을 통제하게 되며 대학은 이들의 장사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대학은 더 이상 비판적인 지식이 태동할수 있는 터전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며, 불균등한 학문의 발전과 자본의 선호에 따른 커리큘럼의 변화가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대학 재정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음으로써 교육비 민간부담률은 더욱 더 상승할 것이며, 보편적인 교육의 권리는 도리어 축소될 것이다.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 대학, 대학기업화에 목을 매어야 하는 대학에서 학문의 발전을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학문공동체인 대학에서 나올 수 있는 주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신앙에 가까운 주장이다.

법인화 체제가 1년 반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와 정부는 구성원들의 우려와 비판적 평가에 대한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법인화 체제의 조용한 정착이야말로 교육 관료들의 목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법인화 체제를 조용히 내버려두지만은 않을 것이다. 소위 자율성이라 불리는 이사회의 독재, 교육의 시장화와 상품화에 대한 문제제기와 투쟁들을 조직해나갈 것이다.
서울대학교 대학본부와 교육부는 법인화 1년 반을 구성원들과 분명히 평가하고, 법인화법 폐기와 법인화 전면 재논의에 나서야 한다. 파행을 빚는 고등교육의 대안은 국립대를 법인화하여 국가의 책임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책임형 사립대를 확대하고 국립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 교육의 주체인 노동자민중이, 학내 구성원들이 함께 국립대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대학기업화의 광풍을 멈춰 세우는 길에 나서자. 교사·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학교와 지역사회의 전면적 협력에 기초한 새로운 교육체제를 수립하자.
2013년 7월 24일
2013년 교육혁명 대장정 서울대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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