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성명서>

“교육 백년대계 다시 세우라”
-교육부의 ‘2022 개정 교육과정총론 시안 주요내용 발표’(11/24)에 부쳐

세상이 급속히 변하는 만큼 교육도 변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 옛날부터 ‘교육은 백년대계’라 하였다. 곡식은 한 해의 계획이 필요하고, 나무는 10년의 계획이 필요한 데 비해, 사람의 교육은 100년의 큰 계획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이나, AI 발달에 따른 디지털 교육도 결코 100년의 큰 계획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100년의 큰 계획이 있는가 또는 올바른가이다.

엊그제 11월 24일 발표한 교육부의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 시안 주요 내용’에서 우리는 안타깝게도 100년의 큰 계획 대신, 정략적인 목적에 따라 교육정책과 교육내용을 수시로 바꿔왔던 교육부의 근시안적 계획의 관행을 다시 확인한다.

교육과정을 왜 바꾸는가? 언제 바꾸어야 하는가?
2015년에 교육과정을 개정한 지 6년이 지났다. 2022년에 교육과정을 개정하면 7년 만에 바꾸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전면적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하였으나, 전면적 교육과정 개정이 안정적 교육과정 운영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 백년대계여야 할 교육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과 반성 속에 꼭 필요한 경우, 꼭 필요한 부분만 개정하는 수시 개정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백년대계에 부합하는 일이다. 문제는 100년의 큰 계획이 올바른가이다.

이제까지의 대한민국의 7차에 걸쳐 개정된 교육과정 그리고 그 이후 수시개정된 교육과정에는 100년을 버텨낼 올바른 계획이 있는가? 그래서, 대한민국의 교육은 만족스러운가? 결코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을 시급하게 바꾸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에서는 50여 년 전인 1968년 이른바 68혁명으로 대학의 서열을 폐지하였다. 대학 서열에 따른 입시경쟁으로 초중고등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불가하였기 때문이다. 서열과 성적 순서에 따른 입시경쟁은 객관적인 기준을 요구하였으며, 이에 따라 학교 교육은 암기 위주의 교육으로 진행되었다. 암기 위주의 교육에서는 탐구 능력, 창의력 등이 살아날 수가 없다. 교육이 황폐화되는 것이다. 대학의 서열을 폐지한 이유이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의 교육은 여전히 대학 서열에 따른 입시경쟁이 치열하며, 경쟁에 이기기 위한 장시간 학습노동과 사교육이 강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말미암아 교육의 황폐화는 물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도 셰계 제1의 수준이며, 학생들은 학습을 통한 발달과 즐거움을 경험할 수도 없다. 교육과정 개정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성적 경쟁, 입시 경쟁, 서열 경쟁으로 초래된 암기 위주의 죽은 교육을 종식시키고, 발달과 배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만들어내야 한다.

대한민국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이 서열 점수경쟁 교육의 철폐여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육부가 내놓은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 주요내용에는 이 같은 심각한 문제의식이 담기지 않았다. 여전히 서열 입시경쟁 교육을 유지,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부가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개정은 중단되어야 한다.

첫째, 교육부 발표에 담긴 ‘미래 변화’, ‘기초소양’, ‘생태전환교육’, ‘민주시민교육’, ‘디지털 기초 소양’, ‘고교학점제’, ‘학생 맞춤형 교육’, ‘진로 연계’, ‘자유학기’ 등은 국민들을 현혹하기 위한 장밋빛 환상에 불과하며, 대한민국의 심각한 교육문제와 동떨어진 한가한 교육과정 개정안이다. 미래, 생태, 민주 등은 너무나 당연한 가치의 재탕이며, 고교학점제는 망국적 입시경쟁을 더욱 심화하는 독소적 조항이다.
서열 경쟁 입시제도가 유지되는 가운데 선택권을 확대하는 고교학점제는 입시 위주의 선택을 확대할 뿐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올바른 교육과정 개정 방향에 역행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선택권의 확대와 교육 다양성의 확보는, 입시교육, 서열 경쟁교육을 중단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교육부가 제시하고 있는 교육과정 개정안은 말만 개정이지 개정이 아니며, 오히려 서열 입시경쟁 교육을 심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개악이다.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둘째,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이란 수식어 또한 실제로는 국민 어느 누구와도 함께 하지 않으면서, 마치 한 것처럼 국민들을 현혹하기 위한 수사일 뿐이다. 우리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도 이른바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에 몇 차례 참여하였으나, 홀로 외톨이가 될 수 없어 참여한 것일 뿐, 교육부의 독선적인 교육과정 개정을 이미 예견하고, 학부모단체를 들러리 세우려 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하였다. 교육부가 말하는 ‘전문가로 구성된 교육과정 개정 추진위원회’, ‘정책연구팀’, ‘범사회적 전문가가 참여한 교육과정정책자문위원회’ 등은 허울좋은 구호일 뿐, 실제로는 일회성의 행사 동원에 그쳐, 제대로 된 ‘국민의 참여’라 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국민과 함께 만드는 교육과정’이라는 표어를 내거는 것만으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교육’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치권력이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국민들을 교육과정 개정 과정 행사나 토론회에 동원하는 것을 국민들의 ‘참여’로 포장하는 일부터 중단해야 한다. 교육부의 몇몇 관료가 교육과정 정책을 만들어 놓고, 전문적, 집중적 검토와 연구의 기회를 배제한 채 교사, 학생, 학부모를 동원하여 의견을 청취하는 시늉을 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셋째, 이미 언급하였지만, 교육부가 추진하는 2022 교육과정 개정은 백년대계와 거리가 멀며, 낭비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교육부의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서열 경쟁 입시제도와 만나는 순간, 서열 경쟁 입시교육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심지어 초등학교 학생들에게까지 선택과목을 부여하겠다는 것은 초등학교부터 학생들을 입시경쟁 교육으로 몰고 가겠다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기초 소양, 맞춤형 교육, 디지털 교육, 미래 교육 등에 대한 강조 부분 역시 아무런 내용이 없는 당연한 것이거나, 오히려 당연한 것을 드러나보이게 하려는 과정에서 학교 교육을 일그러뜨릴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교육 백년대계’라는 표어에는 교육의 정략적 이용을 경계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정치권력자들이 교육이라는 영역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데 이용해 온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핀란드의 국가교육위원회와 같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교육정책 기관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드디어 우리도 2021년 법이 제정되어 ‘국가교육위원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으나, 우리의 ‘국가교육위원회’는 회수를 건넌 탱자처럼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거리가 멀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외면하고 더욱 더 정치권력자들에 의해 장악되는 방향으로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마침, 202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전 영역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개혁 방향이 만들어져야 하는 때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 개정 총론 시안 주요내용을 생산한 교육부 관료들은 2022 교육과정 개정에서 손을 떼기 바란다. 대신, 그야말로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기 바란다. 그때 우리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도 기꺼이 함께할 것이다.

거듭 밝히지만, 11월 24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 시안 주요 내용’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새로 개정되는 2022 교육과정 개정은 교육 공공성과 평등교육의 실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들에게 제공되는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한다는 전제 하에, 모든 단계의 교육기관은 상급 단계의 입시경쟁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스스로의 교육목적에 충실할 수 있도록 그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교육과정은 대강화되어야 할 것이며, 교육과정 편성, 운영의 권한이 각급 단위 학교에 온전히 주어져야 할 것이다.

1. 11월 24일 교육부가 졸속으로 발표한 ‘2022년 개정교육과정 총론 시안 주요 내용’을 폐기하라.
1. 국가교육과정을 대강화하고 미래교육, 디지털교육, 생태전환 교육, 기초학력 보장 등을 포함한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을 각급 단위 교육기관과 교육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겨라.

2021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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