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학생에게 조기 진로 결정을 강요하고, 대학입시에 따른 과목 선택으로 교육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고교학점제를 전면 중단하라! ○ 전교조 울산지부에서 울산지역의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참여교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반대(29%), 전면 재검토(33.1%), 수능을 자격고사화 이후 시행(22.8%)으로 총 84.9%의 응답 교사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전교조 본부에서 진행한 전국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대표교사 설문조사에서도 고교학점제 찬성의견은 고작 7%에 불과했다. 2021년 2월 18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고교학점제 종합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학생들의 맞춤형 진로에 맞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미래형 교육과정이라고 소개한 정책이 학교에서 이를 시험해본 교사들의 찬성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책의 도입 시기에는 고교학점제에 반대하는 교사들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고, 대학입시체제에 맞춘 고등학교 교육을 개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교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각 시도단위에서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와 선도학교를 운영한 지 3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야 고교학점제의 문제점이 학교현장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2월 발표된 ‘고교학점제 종합계획’에 의하면 졸업이수 192학점 중 48학점이 공통이수학점이다. 이는 전체 이수학점의 3/4을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따라 과목 선택을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단계에서 3~5과목(12학점 ~16학점)을 선택하고, 2학년과 3학년에서는 전과목을 선택하여 개인별 교육과정을 구성해야한다는 말이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2015교육과정에서는 2학년 단계에서 국어, 영어, 수학, 예체능, 교양 공통부분을 빼고, 1/2 정도를 자신의 진로 및 대학입시 계획에 따라 선택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1학년 1학기에 진로희망이 어느 정도 결정되어야 하고, 이를 기반하여 선택과목에 대한 수요조사를 실시해야, 2학기에 선택과목이 확정되고 교과서 주문을 할 수 있어 2학년에서 선택과목 수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부터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면 학생들의 진로계획과 과목선택은 언제 확정이 되어야 할까? 고등학교 과정에서 충분한 진로 탐색, 폭넓은 교과학습 경험없이 자신의 진로를 중학교에서 결정하고 고등학교에서 그에 맞춘 수업을 선택하는 것은 직업세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과정일 수 없다. 학생들의 꿈과 진로는 고등학교 3년 동안에도 변화무쌍하다. 이른 시기에 진로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성장과도 맞지 않다.

 

○ 정부의 ‘고교학점제 종합계획’에는 학생들의 과목선택권을 보장하는 정책들로 가득 차 있다. 이를 위해 연구학교, 선도학교의 교사들이 감당해야할 과목 수는 늘어나고, 이것으로 인한 수업준비 및 평가에 따른 업무가중이 심한 것으로 설문조사에 나타났다. 교사의 업무가중은 수업 자체의 질적 하락, 학생들의 상담시간 감소, 생활지도 소홀, 학교행사 준비 부족 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국가가 감당해야 할 공교육의 약화로 이어지고,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국어라는 과목을 문학과 상상력, 시와 개념, 언어와 매체 등으로 숫자를 늘려 확대한다 하더라도 이는 수업자체의 질적 향상, 수업방법의 다양화, 수업 혁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국가자격을 갖추고 임용고사를 통과한 교사들의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고, 전공과는 무관한 과목을 가르치거나 적절한 수업준비를 못할 정도의 많은 과목을 가르쳐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문제는 대학서열화와 학벌, 이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과 연결되어 있다. 수능의 대학입시 반영 비율은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수업내용을 좌지우지한다. 이런 가운데 고등학교에서 수업선택권의 자율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학생 진로에 맞춘 수업선택은 다른 말로 대학입시에 맞춘 과목선택을 한다는 말이다. 정부의 계획대로 대학입시에서 정시가 40%로 확대된다는 말은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의 선택 비중이 높아야한다는 뜻이고, 사회와 과학은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의 고교학점제에서는 학생의 개별교육과정, 맞춤형 교육과정을 실현한다고 한다. 그러나 수능 점수만으로 대학의 입학을 결정하는 방식(정시)은 모든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획일화하고 학생의 다양한 학습욕구와 학습경험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정부는 고교학점제의 정착을 말하기 전에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학입시를 개혁하고, 대학서열화를 완화시키는 정책을 펴야한다.

 

○ 우리나라의 초중등교육과정은 국가의 관리 아래에서 보편교육을 지향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갖추어야할 자질을 키우는 교육과정으로서 교육과정 총론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단계에 맞는 교육과정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 국가가 부여하는 자격을 갖춘 교사들의 숫자도 엄격히 제한하여 임용하고, 이에 대한 자율을 지자체에 부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지역간의 격차, 개별 학생의 사교육 격차에도 불구하고 일반계 고등학교 내에서는 비슷한 교육과정이 제공되어 생활기록부의 수강과목이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부의 고교학점제는 학교 밖을 넘어서 개별학생에게 과목선택권의 자율성을 무한정 부여한다. 교육감의 권한으로 고시 외 과목 허용, 박사급 전문가의 한시적 교사자격 부여가 가능하다. 또한 지자체의 교육기관이나 대학에서 수강한 과목도 정식 학점이수에 포함될 수 있고 원격수업으로 학점을 이수할 수도 있다. 대학에서 학점을 이수하는 학생과 원격수업으로 학점을 이수하는 학생의 차별이 생겨난다. 학교 안에서 국가 자격을 갖춘 교사의 수업을 함께 듣고 학습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개별 학습경험이 강화되어 거주지역 및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지원 정도에 따른 학습격차는 심해진다. 이는 고스란히 대학입시에서의 차별과 연결되고 학생들이 공정하고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박탈하게 된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때 더 이상 공교육은 공교육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교육의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고교학점제 시행을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하여 학생의 성장과 사회적 평등에 부합하는 교육과정과 교육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2021년 7월 27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울산지부